8 House 건축 이야기 — 도시와 생활로 다시 읽다
ARCHITECTURE STORY · 따뜻한 빛과 표면
Shigeru Ban의 건축을 도시와 생활의 관점으로 읽다
도시와 생활 · ARCHITECTURE ESSAY
Shigeru Ban의 건축을 실내건축과 현장의 눈으로 다시 읽다
건축은 혼자 서 있지 않는다. 도시의 결, 생활의 습관, 시대의 욕망과 함께 읽혀야 한다.
2011년 2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큰 지진이 났다. 도시의 상징이던 돌 성당의 첨탑이 무너졌다. 그리고 2년 반쯤 뒤, 그 도시 한쪽에 종이로 만든 성당이 섰다. Cardboard Cathedral. 정식 이름은 임시 대성당이라는 뜻의 Transitional Cathedral이다. 종이라는 말에 처음엔 웃었다. 비 오면 어쩌려고. 그런데 알고 보니 이 건물이 무서워한 건 바람이나 지진이 아니었다. 물과 불이었다. 종이를 쓸 때 진짜 적이 누구인지 아는 것, 이 글에서 챙겨 갈 건 그거 하나다.

이 건축가의 특징

본 이미지는 실사진이 아니라, 마스터 DB의 건축 특성 키워드를 바탕으로 자체 제작한 요약 일러스트입니다.
GOOGLE MAP
Cardboard Cathedral · 크라이스트처치, 뉴질랜드
도시 기준 좌표: -43.5321, 172.6362
잠깐 쉬어가는 코너 🧐
실내건축을 공부하다 보면 이런 농담을 자주 한다 — '좋은 건축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고. Cardboard Cathedral을 보면 이 농담이 은근히 진심으로 들린다. '임시건축'과 '지속가능성' 같은 요소들이 장식이 아니라 약속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01
지진 뒤의 도시를 떠올리면 늘 소리부터 생각난다. 중장비가 잔해를 긁는 소리, 펜스 철판이 바람에 덜컹대는 소리. 크라이스트처치 시내도 오래 그랬다고 한다. 건물이 비고, 출입 금지 테이프가 길을 막고, 사람들이 모일 자리가 사라졌다. Cardboard Cathedral은 그 빈자리에 들어섰다. 원래 성당이 있던 광장이 아니라 조금 떨어진 다른 교회 터였다. 반 시게루는 르완다 난민 캠프, 고베 지진 피해지 같은 곳에서 오래전부터 종이관으로 임시 건물을 지어 온 건축가다. 그에게 종이는 손에 익은 연장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건물의 쓰임이다. 예배만 드리는 곳이 아니었다. 음악회가 열리고, 추모식이 열리고, 동네 사람들이 그냥 앉아 있다 갔다. 무너진 도시에 다시 생긴 거실 같은 것. 사진 속 사람들 표정이 생각보다 밝아서 좀 놀랐다. 나도 모르게 찡했다.
02
건물 모양은 단순한 삼각형이다. 양쪽 지붕선이 A자로 만나 높이 솟는다. 그 지붕을 이루는 게 같은 지름의 커다란 종이관들인데, 그 수가 98개라고 알려져 있다. 관의 지름은 같고 길이만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앞에서 뒤로 갈수록 삼각형 크기가 미세하게 줄어들고, 관 사이 틈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그 틈으로 빛이 길게 줄무늬를 그리며 떨어진다. 지붕 겉은 반투명 폴리카보네이트 판으로 덮었다. 종이관이 비를 맞지 않게 한 겹 우산을 씌운 것이다. 건물 아래쪽에는 선박용 컨테이너를 늘어놓아 벽을 세우고 그 안을 작은 방과 창고로 썼다. 컨테이너 위에는 공사장에서 늘 보던 그 골판 철판 결이 그대로 보인다. 앞면 큰 삼각형 창에는 색유리 조각이 박혀 있는데, 무너진 옛 성당의 둥근 장미창 그림을 따왔다고 한다. 새 건물이 옛 건물의 얼굴 한 조각을 들고 서 있는 셈이다. 그 대목에서 한참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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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STORY · 따뜻한 빛과 표면”
종이로 지은 건물이라고 하면 다들 바람에 날아갈까, 무너질까부터 묻는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두꺼운 종이관은 생각보다 세다. 공사장에서 둥근 콘크리트 기둥을 부을 때 쓰는 원형 거푸집도 대개 두꺼운 종이로 만든 관이다. 그 안에 시멘트 반죽을 가득 채워도 버틴다. 문제는 힘이 아니라 물이다. 종이는 젖으면 힘을 잃고 곰팡이가 슨다. 그리고 불에 약하다. 그래서 Cardboard Cathedral의 종이관은 방수 코팅과 방염 처리를 거쳤고, 지붕은 따로 덮개를 씌워 비를 직접 맞지 않게 했다. 그러니까 이 건물의 설계는 종이를 물과 불에서 떼어 놓는 일에 가까웠다. 이게 은근히 통쾌하다. 약점을 정확히 알면 약한 재료도 건물이 된다. 반대로 강한 재료라도 약점을 모르면 금방 상한다. 우리 집 베란다 합판 선반이 그랬다. 물 한 번 고였을 뿐인데 끝이 부풀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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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당에서 집으로 가져올 실천 하나는 소박하다. 종이와 섬유처럼 물에 약한 재료는 바닥과 벽의 물기에서 떼어 둔다. 요즘 지관 스툴이나 종이 수납함, 라탄 바구니 같은 소품이 많다. 예쁘다. 그런데 욕실 앞, 베란다 창가, 주방 싱크대 아래처럼 물기가 도는 자리에 바닥째 붙여 두면 몇 달 안에 밑동부터 얼룩이 올라온다. 다리나 받침을 달아 바닥에서 손가락 두 마디쯤만 띄워도 수명이 훨씬 길어진다. 겨울철 결로가 생기는 북쪽 벽에서 한 뼘 떨어뜨려 두는 것도 같은 이치다. 성당이 종이관 위에 폴리카보네이트 덮개를 씌웠듯이, 집에서는 투명 코팅제 한 번이 그 덮개 노릇을 한다. 나는 현관 신발장 아래 종이 박스를 이 방법으로 바꿨다. 플라스틱 받침 네 개를 붙였을 뿐이다. 장마를 한 번 넘겼는데 아직 멀쩡하다. 재료를 탓하기 전에 자리를 먼저 의심해 볼 일이다.
현장에서 임시 가설물이라고 하면 보통 대충 세웠다가 걷는 것을 말한다. 가설 펜스, 가설 사무실, 가설 계단. 오래 쓸 생각이 없으니 마감도 관리도 허술하다. 이 성당은 그 단어를 뒤집었다. 임시라고 불렀지만 수십 년을 버틸 수 있게 설계됐다고 알려져 있다. 접합부, 방수, 방염 하나하나가 본 건물 수준이다. 가설물에도 이 정도 정성을 들이면 도시가 회복하는 동안 사람들이 기댈 자리가 된다. 우리 발전소 가설 휴게실이 떠오른다. 삼 년째 임시인데, 의자 다리는 짝짝이다.
Cardboard Cathedral은 종이로 지었다는 사실 때문에 유명해졌지만, 사진을 오래 보고 나면 다른 게 남는다. 무너진 도시에서 사람들이 다시 모여 앉을 수 있었다는 것. 그게 이 건물이 한 일이다. 임시라는 말이 이렇게 따뜻하게 들린 적은 처음이다. 언젠가 그 삼각형 창 아래 의자에 한 번 앉아 보고 싶다.
종이관에 방수 코팅을 했고, 지붕 위를 반투명 폴리카보네이트로 덮어 비를 직접 맞지 않게 했습니다. 종이관은 구조를 맡고, 비는 덮개가 막는 식으로 역할을 나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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