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House 건축 이야기 — 도시와 생활로 다시 읽다

ARCHITECTURE STORY · 따뜻한 빛과 표면

8 House

Bjarke Ingels / BIG의 건축을 도시와 생활의 관점으로 읽다

📍코펜하겐, 덴마크

도시와 생활 · ARCHITECTURE ESSAY

8 House

Bjarke Ingels / BIG의 건축을 실내건축과 현장의 눈으로 다시 읽다

건축은 혼자 서 있지 않는다. 도시의 결, 생활의 습관, 시대의 욕망과 함께 읽혀야 한다.

자전거를 탄 채 꼭대기 층 현관 앞까지 올라갈 수 있는 아파트가 있다고 했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코펜하겐 남쪽 외레스타드에 있는 8 House 이야기다. Bjarke Ingels가 이끄는 BIG가 설계했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숫자 8처럼 꼬인 한 줄 건물이 마당 두 개를 끌어안고 있다. 사진을 여러 장 넘겨 봤다. 눈이 자꾸 멈춘 곳은 꼬인 지붕선보다 경사진 길가였다. 어느 사진에선 현관 옆에 내놓은 의자 하나와 화분 몇 개가 찍혀 있었다. 누가 저기에 저걸 내놨을까. 그 사람은 하루에 몇 번이나 저 의자에 앉을까. 오늘 따라가 볼 질문도 거기서 나왔다. 현관 앞 한 뼘의 통로가, 지나가기만 하는 길에서 사람이 머무는 골목으로 바뀌려면 무엇이 있어야 할까.

8 House 건축 스케치 일러스트
8 House 스케치 일러스트 — 실제 사진이 아니라 AI로 생성한 그림입니다.
건축가
Bjarke Ingels / BIG
건축물
8 House
위치
코펜하겐, 덴마크
시대
Contemporary Architecture
오늘의 관점
도시와 생활

이 건축가의 특징

Bjarke Ingels / BIG 건축 특성 요약 카드

본 이미지는 실사진이 아니라, 마스터 DB의 건축 특성 키워드를 바탕으로 자체 제작한 요약 일러스트입니다.

GOOGLE MAP

건축물이 놓인 자리

8 House · 코펜하겐, 덴마크
도시 기준 좌표: 55.6761, 12.5683

잠깐 쉬어가는 코너 🧐

이름표 대신 숫자

8 House는 덴마크에서 8tallet, 그러니까 '숫자 8'이라는 뜻의 이름으로도 불린다. 평면을 위에서 보면 한 줄로 이어진 건물이 가운데에서 한 번 엇갈리며 두 개의 마당을 만든다. 이름을 따로 짓지 않고 생김새를 그대로 부른 셈이다.

01

길이 집 앞까지 올라온다

8 House는 2010년 무렵 완공된 복합 건물이다. 한 덩어리 안에 사는 집과 일하는 곳과 가게가 같이 들어 있다. 아래쪽엔 사무실과 상점, 그 위로 아파트, 꼭대기 쪽엔 테라스 딸린 타운하우스가 얹히는 식으로 소개된다. 여기까지는 다른 복합 단지에서도 흔히 듣는 구성이다. 눈에 띄는 건 길이다. 지상에서 시작한 경사 산책로가 건물을 따라 끊기지 않고 꼭대기 층까지 이어진다. 계단 대신 비탈. 그래서 걸어서도, 자전거를 타고서도 자기 집 문 앞까지 갈 수 있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꼭대기 타운하우스에 사는 사람은 매일 저녁 이 언덕을 한 바퀴 넘어 퇴근하는 셈이다. 처음 이 설명을 읽고 엉뚱하게도 동네 뒷산 둘레길이 떠올랐다. 빙 돌며 오르다 보면 같은 소나무를 다른 높이에서 다시 만나는 길. 8 House의 비탈도 비슷하다. 몇 층을 오르면 방금 지나온 마당이 발아래 다시 펼쳐진다. 높이가 숫자로 바뀌지 않고 풍경으로 바뀐다. 그게 좋았다.

02

8자의 허리에서 생기는 일

숫자 8을 그려 보면 가운데에서 선이 한 번 엇갈린다. 이 건물도 그 허리 부분에서 두 고리가 만나고, 그 자리 아래가 뚫려 양쪽 마당이 서로 통한다. 한쪽 마당에서 다른 쪽 마당으로, 그리고 건물 바깥 들판 쪽으로 사람들이 가로질러 다닌다. 외레스타드는 새로 계획된 동네라 처음엔 길도 사람도 드물었을 텐데, 이 건물은 자기 몸 한가운데를 남에게 지름길로 내준 셈이다. 나는 이런 결정에 약하다. 현장에서 제일 미움받는 구조물이 사람을 빙 돌아가게 만드는 펜스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튼튼해도 동선을 끊는 물건에는 언젠가 누군가 개구멍을 낸다. 8 House는 그 개구멍을 처음부터 설계에 넣어 둔 쪽이다. 지붕 한쪽은 들판을 향해 비스듬히 내려가며 풀로 덮여 있다고 하는데, 사진으로 보면 건물이 땅에서 천천히 일어서는 언덕 같다. 그 언덕의 품 안쪽, 두 마당은 저녁이면 꽤 시끄러울 것 같다. 자전거 벨 소리, 아이 부르는 소리, 누가 떨어뜨린 열쇠 꾸러미. 그런 소음이라면 참을 수 있다.

03

“ARCHITECTURE STORY · 따뜻한 빛과 표면”

골목은 문 앞에서 시작된다

어릴 적 살던 동네 골목에는 대문마다 뭔가가 나와 있었다. 고무 대야에 심은 고추 모종, 빨간 플라스틱 의자, 연탄재를 모아 둔 양동이. 그 물건들 덕에 골목은 길이면서 마당이었다. 저녁이면 옆집 할머니가 그 의자에 앉아 콩나물 꼬리를 땄고, 지나가던 사람은 한마디씩 보태고 갔다. 8 House의 경사로 사진을 보다가 그 골목이 겹쳤다. 비탈길 쪽으로 현관과 작은 테라스가 줄지어 면해 있고, 길과 집 사이에 높은 담이 없다. 문을 열면 이웃의 발소리가 들리고, 화분에 물을 주다 지나가는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 설계자는 이 길이 단지의 골목처럼 쓰이길 바랐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게 되려면 일단 사람이 멈춰야 한다. 멈추려면 엉덩이 붙일 데가 있어야 하고, 손이 갈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화분 하나, 걸터앉을 턱 하나. 우리 아파트 복도는 늘 깨끗하다. 깨끗해서, 아무도 서 있지 않다.

04

우리 집에 옮긴다면 — 현관 앞 한 뼘을 골목으로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면 먼저 하나 짚고 가야 한다. 공용 복도와 계단은 불이 났을 때 빠져나가는 피난 통로라서, 거기에 의자나 화분을 내놓는 건 소방 관련 규정으로 막혀 있다. 안전을 보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건 양보 못 한다. 그래서 8 House의 골목은 문 안쪽으로 들인다. 현관에서 거실로 이어지는 짧은 복도, 혹은 중문 앞 한 뼘. 거기에 걸터앉을 수 있는 낮은 벤치 하나를 둔다. 신발을 신고 벗는 그 몇 초를 위해서라도 앉을 자리는 쓸모가 있고, 한번 생기면 사람은 거기에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택배 상자를 뜯고, 잠깐 휴대폰을 본다. 벤치가 들어갈 폭이 안 나오면 벽에 얕은 선반 하나를 달아 작은 화분이나 열쇠 접시를 올린다. 열쇠를 내려놓는 손짓 하나에 걸음이 반 박자 늦어진다. 단독주택이나 빌라처럼 문 앞이 온전히 내 몫인 집이라면 이야기가 쉬워진다. 문 옆에 화분 두어 개와 접이식 의자 하나. 그 정도로도 이웃이 말을 걸 핑계가 생긴다. 무슨 꽃이에요, 물은 며칠에 한 번 줘요, 하는 식으로.

현장 메모

경사로 사진을 보면 손이 먼저 물매를 잰다. 휠체어와 자전거가 함께 쓰는 비탈이라면 기울기를 얼마나 눕혔을지, 겨울에 언 눈이 붙으면 누가 언제 치울지, 배수구는 길 바깥쪽에 냈을지 안쪽에 냈을지. 비탈에 떨어진 비는 흘러 내려가다 꼭 어딘가에 모인다. 대개 제일 귀찮은 자리다. 집집마다 현관이 길에 바로 면해 있다면 문턱과 길 사이 몇 센티미터의 단차와 물막이 처리가 이 건물의 하자 목록을 좌우했을 텐데, 그 부분을 찍은 사진은 잘 안 보인다. 준공 사진은 늘 맑은 날만 고른다. 비 오는 날의 8 House를 언젠가 보고 싶다.

마무리

사진을 덮고도 그 의자 하나가 오래 남았다. 비탈길 옆, 누가 내놨는지 모를 의자. 꼬인 지붕선은 벌써 흐릿한데 의자는 또렷하다. 그 주인은 오늘도 저기 앉아 지나가는 자전거를 구경했을까. 괜히 그게 궁금하다. 오늘 저녁엔 현관 중문 앞을 줄자로 한번 재 봐야겠다. 벤치 하나 들어갈 폭이 나올지. 안 나오면 선반이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8 House은 왜 도시와 함께 읽어야 할까?

건축은 혼자 서 있는 조형물이 아니라 도시의 속도와 생활의 습관 속에서 작동한다. Bjarke Ingels / BIG의 설계도 그 장소의 리듬과 분리해서 보면 절반만 보인다.

여행하지 못해도 건축을 읽을 수 있을까?

가능하다. 지도, 사진, 도면, 도시의 맥락을 천천히 따라가면 직접 방문하지 못해도 공간의 흐름을 상상할 수 있다. 이 과정 자체가 건축을 공부하는 방식이 된다.

오늘의 상업공간이나 집에는 어떤 힌트가 남을까?

공간의 중심을 정하고, 동선과 조명, 마감재, 가구를 하나의 생활 흐름으로 묶는 태도다. 도시를 읽는 눈은 작은 실내공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참고 문헌 및 출처

  • 8 House —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8_House
  • BIG 프로젝트 페이지 — 8 House: https://www.big.dk/projects/8-house-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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