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House 건축 이야기 — 도시와 생활로 다시 읽다
ARCHITECTURE STORY · 미니멀 갤러리
Kazuyo Sejima / SANAA의 건축을 구조와 동선의 관점으로 읽다
구조와 동선 · ARCHITECTURE ESSAY
Kazuyo Sejima / SANAA의 건축을 실내건축과 현장의 눈으로 다시 읽다
겉모습보다 먼저 읽어야 할 것은, 이 건축이 사람을 어떤 순서로 움직이게 만드는가이다.
가나자와라는 도시는 눈이 많이 온다고 들었다. 겨울이면 지붕마다 눈을 녹이려고 물을 뿜는다는 그 동네. 그런 땅에 유리로 된 둥근 건물이 하나 앉아 있다. 21st Century Museum of Contemporary Art, Kanazawa. 도면을 처음 펼쳐 놓고 입구를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 앞문이 어디지. 그게 이 건물의 첫 질문이었다. 오늘의 열쇠말은 구조와 동선이다. 발전소 현장에서 사람 동선과 점검로를 먼저 보는 버릇이 든 뒤로, 나는 건물을 볼 때 어디로 들어가 어디서 멈추는지부터 묻게 됐다. 이 건물은 그 질문을 정면으로 받아친다. 들어가는 문이 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건축가의 특징

본 이미지는 실사진이 아니라, 마스터 DB의 건축 특성 키워드를 바탕으로 자체 제작한 요약 일러스트입니다.
GOOGLE MAP
21st Century Museum of Contemporary Art · 가나자와, 일본
도시 기준 좌표: 36.5613, 136.6562
잠깐 쉬어가는 코너 🧐
대부분의 건물은 정면이 화려하고 뒷면이 수수하다. 짐이 드나들고 설비가 붙는 쪽이 뒤가 되기 때문이다. 둥근 평면에 입구를 사방으로 흩으면 이 위계가 사라진다. 어느 길에서 온 사람이든 자기 쪽이 정문이 되는 집. 이 작은 결정 하나가 건물과 도시의 관계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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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st Century Museum of Contemporary Art, Kanazawa의 평면을 보면 묘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이 완전한 원이다. 지름이 백 미터를 넘는 유리 원통. 그런데 이 원에는 정면이 없다. 보통 미술관이라면 번듯한 주 출입구가 앞에 있고, 뒤로는 서비스 동선이 숨는다. 여기는 그 앞뒤 구분 자체를 지웠다. 사방 어느 방향에서 걸어와도 유리벽을 따라 들어갈 수 있게 입구를 여러 곳에 흩어 놓았다. 도시의 어느 길에서 오든 그 사람에게는 그쪽이 정문이 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설계자가 던진 태도를 읽었다. 건물이 도시를 향해 등을 돌리지 않겠다는 것. 현장에서 창고 하나를 지어도 짐차가 들어오는 뒤쪽은 늘 마감이 거칠어지는데, 이 건물은 뒤쪽이라는 개념을 아예 만들지 않음으로써 그 거칠어짐을 피했다. 원이라는 형태가 멋 때문이 아니라 동선의 평등 때문에 선택됐다는 생각이 들자, 둥근 유리벽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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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안쪽으로 눈을 옮기면 질서가 한 번 더 흐트러진다. 전시실들이 벽을 맞대고 줄지어 붙어 있지 않다. 크고 작은 방들이 제각기 다른 높이와 크기로, 바다에 뜬 섬처럼 띄엄띄엄 놓여 있다. 그 섬들 사이의 빈 곳이 통로이고 마당이고 쉬는 자리가 된다. 그러니까 관람객은 정해진 한 줄 코스를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섬과 섬 사이를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된다. 막다른 길이 거의 없다. 한 방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또 다른 방향이 열려 있고, 유리벽 너머로 바깥 풍경과 다른 방이 겹쳐 보인다. 그 사이를 걷는 사람들은 좀처럼 직선으로 가지 못한다. 한 방을 나와 머뭇거리다 엉뚱한 쪽으로 새고, 유리에 비친 다른 방을 보고 다시 걸음을 튼다. 길이 하나뿐이면 사람은 빨리 끝내고 나가려 한다. 길이 여럿이면 자꾸 다른 쪽이 궁금해져서 걸음이 느려진다. 걸음이 느려지면 공간은 넓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 면적은 그대로인데도 말이다. 유리 이음매에 붙은 겨울 햇빛이 방마다 다른 각도로 떨어지는 장면을 상상하면, 같은 건물을 수십 번 와도 매번 다른 집처럼 걸을 수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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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STORY · 미니멀 갤러리”
구조만 떼어 놓고 봐도 이 건물은 솔직하다. 유리벽이 사방을 두르고 있으니, 벽이 힘을 받는 대신 가느다란 기둥들이 지붕을 든다. 기둥이 두꺼우면 시선이 거기서 끊기고, 섬처럼 흩어진 방들의 가벼움이 무너진다. 그래서 기둥은 눈에 거슬리지 않을 만큼 가늘게 다듬어졌다. 나는 설비를 다루는 사람이라 이런 가벼움이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는 걸 안다. 가늘게 보이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정교하게 힘을 나눠야 하고, 바닥 아래와 지붕 속에 설비와 배관이 숨을 자리를 미리 비워 둬야 한다. 겉이 단순할수록 속은 빽빽하다. 준공 사진의 투명함은 그 빽빽함을 다 숨긴 결과다. 그래서 나는 이런 건물을 볼 때 감탄보다 먼저, 십 년 뒤 저 유리 이음매의 실리콘이 어떻게 늙어 갈지를 궁금해한다. 직업병이다. 하지만 그 궁금함이 있어야 건물이 그림이 아니라 몸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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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에서 집으로 가져올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회유동선을 집는다. 돌아서 한 바퀴 돌 수 있는 길. 좁은 집일수록 복도 끝이 막혀 있다. 방에 들어갔다가 왔던 길로 되돌아 나와야 한다. 그 되돌아 나오는 동선이 집을 실제보다 좁고 답답하게 만든다. 가나자와의 미술관처럼 거창하게 원을 그릴 필요는 없다. 거실과 주방과 복도가 한 바퀴로 이어지게 가구를 조금만 물려 놓아도, 집은 막힌 자루가 아니라 순환하는 고리가 된다. 식탁을 벽에서 떼어 섬처럼 세우고, 책장을 벽 대신 공간 가운데에 낮게 놓아 양쪽으로 돌 수 있게 하는 식이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효과가 더 크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막힌 길보다 도는 길을 좋아한다. 한 바퀴 도는 집에서는 같은 평수라도 걸음 수가 늘고, 걸음이 늘면 집이 넓어진다. 나는 내 작은 집에서도 소파 하나를 돌려 놓는 것으로 이 고리를 흉내 내 봤다. 아직 완벽하진 않다. 그래도 아침마다 도는 길이 하나 생겼다.
도면을 책상에 펼쳐 놓고 혼자 웃었던 건 오랜만이다. 원 하나에 입구를 사방으로 뚫어 놓은 배짱이 좋아서다. 현장 사람 눈으로 보면 걱정거리도 보인다. 유리가 사방을 두르면 여름 냉방 부하와 겨울 결로는 어떻게 잡았을까, 눈 많은 가나자와에서 그 많은 유리 지붕과 벽의 이음매는 누가 어떻게 올라가 점검할까. 멋진 투명함의 뒤에는 늘 사다리와 걸레와 실리콘 건이 숨어 있다. 그걸 안다고 투명함이 덜 좋아지진 않는다. 오히려 그 수고를 알고 나면, 깨끗하게 유지되는 유리 한 장이 더 귀해 보인다.
도면을 접고 나서 머리에 남은 건 둥근 형태가 아니라 그 안을 걷는 발의 감각이었다. 앞뒤가 없고, 방은 섬처럼 떨어져 있고, 길은 자꾸 되돌아온다. 어느 쪽으로도 사람을 몰지 않는 집이다. 나는 언젠가 눈 내리는 겨울에 이 유리 원통 안을 느리게 돌아 보고 싶다. 그때는 아마 지금 상상한 동선과 다른 길로 걷게 되겠지. 가 보지도 않았는데 벌써 두 번째 코스를 짜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입구에서 중심 공간으로 이동하는 흐름, 시선이 꺾이는 지점, 머무는 장소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보는 것이 좋다. Kazuyo Sejima / SANAA의 설계는 형태보다 이동의 순서를 통해 공간을 이해하게 만든다.
멋진 장면보다 유지관리, 안전 여유, 구조와 설비가 서로 충돌하지 않는지가 먼저 보인다. 이 관점은 건축을 더 현실적이고 오래 쓰이는 공간으로 읽게 만든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서, 조명의 위치, 수납과 가구의 간섭, 마감재의 내구성을 한 번에 보는 태도다. 형태 복제보다 동선의 질서를 가져오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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