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House 건축 이야기 — 도시와 생활로 다시 읽다
ARCHITECTURE STORY · 미니멀 갤러리
Luis Barragán의 건축을 구조와 동선의 관점으로 읽다
구조와 동선 · ARCHITECTURE ESSAY
Luis Barragán의 건축을 실내건축과 현장의 눈으로 다시 읽다
겉모습보다 먼저 읽어야 할 것은, 이 건축이 사람을 어떤 순서로 움직이게 만드는가이다.
파란 벽 앞에 붉은 기둥 하나가 물속에 서 있는 사진. 그 한 장으로 유명해진 집이 Casa Gilardi다. 바라간이 은퇴했다가 젊은 의뢰인들의 끈질긴 부탁에 다시 손을 잡았다는, 그의 사실상 마지막 집. 오늘은 이 집을 구조와 동선의 눈으로 읽는다. 그 유명한 수영장 방에 어떻게 다다르게 되는지.
이 건축가의 특징
본 이미지는 실사진이 아니라, 마스터 DB의 건축 특성 키워드를 바탕으로 자체 제작한 요약 일러스트입니다.
GOOGLE MAP
Casa Gilardi · 멕시코시티, 멕시코
도시 기준 좌표: 19.4326, -99.1332
잠깐 쉬어가는 코너 🧐
은퇴한 바라간을 다시 움직인 건 두 젊은 의뢰인의 끈기였다고 전해진다. 거절을 거듭하던 노건축가를 결국 부지의 자카란다 나무가 설득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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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고 긴 대지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오래된 자카란다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바라간은 이 나무를 베지 않으려고 집을 둘로 나눴다. 앞쪽에 방들, 뒤쪽에 그 유명한 방, 그 사이를 긴 복도가 잇는다. 나무 한 그루가 집 전체의 구조를 정한 셈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도면을 백지에서 시작하지 않고, 이미 그 자리에 있던 것에 양보하면서 시작하는 태도. 그게 결국 이 집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도면 그리는 사람들은 대개 빈 종이가 제일 편하다고 한다. 아무것도 없어야 마음대로 그리니까. 그런데 진짜 좋은 설계는 이미 있는 것에 지는 데서 나오기도 한다. 나무 한 그루한테 진 집이 그 나무 덕에 유명해졌다.
02
앞채에서 뒤채로 가려면 긴 복도를 지나야 한다. 그런데 이 복도가 통째로 노랑이다. 벽도 천장도 노랑이고, 한쪽에 낸 좁고 긴 수직창으로 빛이 들어와 온 복도가 노란빛으로 물든다. 걷는 몇 초 동안 눈이 노랑에 흠뻑 젖는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 문을 열면 파랑과 빨강의 수영장 방이 나온다. 노랑에 절여진 눈이 그 순간 파랑을 몇 배로 강하게 받는다. 복도가 길어서 낭비가 아니라, 그 길이가 다음 방을 위한 준비였던 것. 도착을 일부러 늦추는 이 동선이 이 집의 핵심이다. 나는 복도가 좋은 집을 오래 신뢰해 왔다. 방과 방을 뜸 들이며 잇는 집은 어딘가 여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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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방엔 수영장이 실내로 들어와 있다. 물이 방 절반을 채우고, 그 물속에 붉은 기둥이 서 있고, 벽은 파랑. 천창에서 떨어진 빛이 수면에 반사돼 파란 벽에서 일렁인다. 거실에서 밥 먹다가 바로 물에 들어갈 수 있는 방이라니. 기능으로 따지면 이상한 방이다. 습기 관리도 골치일 거고. 그런데 이 방 하나 때문에 온 세계가 이 집을 안다. 실용성을 버리고 얻은 장면. 바라간이 은퇴를 접고 돌아와 남긴 게 이거라면, 남는 장사였다. 밥 짓는 냄새와 물비린내가 한 방에 도는 집. 상상하면 좀 이상하지만, 그 이상함이 이 방의 매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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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이 알려주는 건 동선을 아껴 쓰지 말라는 거다. 요즘은 복도를 죽은 면적이라고 없애려 든다. 최단거리로 방과 방을 붙인다. 그런데 Casa Gilardi는 반대로 간다. 도착 전에 눈과 마음을 준비시키는 시간을 일부러 만든다. 집에서라면 현관에서 거실까지 몇 걸음, 그 짧은 통로를 조금 어둡게 두거나 한쪽 벽 색을 달리해서 '넘어가는 느낌'을 주는 것. 그 몇 초가 집에 들어서는 기분을 바꾼다. 복도는 버리는 공간이 아니라 다음 방을 위한 뜸 들이기다. 최단거리가 늘 최선은 아니다. 어떤 거리는 일부러 남겨둬야 다음 방이 산다.
실내에 수영장을 들인 방은 마감쟁이한테는 경고등이 켜지는 조합이다. 물, 습기, 그리고 강한 색 회벽이 한 방에 모여 있다. 지속적인 습기는 도장과 미장을 들뜨게 하고 곰팡이를 부른다. 환기 설계, 방수, 결로 처리가 촘촘하지 않으면 저 파란 벽은 몇 해 못 가 얼룩진다. 저 사진 한 장이 유지되려면 눈에 안 보이는 설비가 계속 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Casa Gilardi는 은퇴한 노건축가가 나무 한 그루 때문에 다시 붓을 든 집이다. 베지 않은 나무, 일부러 길게 뺀 복도, 밥 먹다 뛰어들 수 있는 물. 다 비효율적인데, 그래서 잊히지 않는다. 언젠가 저 노란 복도를 실제로 걸어보고 싶다. 몇 초 만에 눈이 노랑에 젖는다는 게 어떤 건지, 사진으로는 도무지 다 모르겠어서. 그리고 그 노랑 다음의 파랑은, 아마 사진 백 장을 봐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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