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dney Opera House을 천천히 읽는 시간 — 도시와 생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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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STORY · 묵직한 구조감
Sydney Opera House
Jørn Utzon의 건축을 도시와 생활의 관점으로 읽다
도시와 생활 · ARCHITECTURE ESSAY
Sydney Opera House
Jørn Utzon의 건축을 실내건축과 현장의 눈으로 다시 읽다
건축은 혼자 서 있지 않는다. 도시의 결, 생활의 습관, 시대의 욕망과 함께 읽혀야 한다.
1957년, 시드니의 새 오페라하우스 공모전에서 무명의 덴마크 건축가가 뽑혔다. 심사 막바지에 도착한 예선 탈락작 더미에서 한 심사위원이 그의 도면을 다시 건져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Sydney Opera House는 그렇게 시작됐다. 완공까지 십육 년, 예산은 계획의 열 배를 넘겼고, 건축가는 완성을 보지 못한 채 호주 땅을 떠났다. 오늘은 이 흰 지붕들이 시드니라는 도시의 생활과 맺어 온, 상처투성이면서도 눈부신 관계를 읽는다.
이 건축가의 특징
본 이미지는 실사진이 아니라, 마스터 DB의 건축 특성 키워드를 바탕으로 자체 제작한 요약 일러스트입니다.
GOOGLE MAP
건축물이 놓인 자리
Sydney Opera House · 시드니, 호주
도시 기준 좌표: -33.8688, 151.2093
잠깐 쉬어가는 코너 🧐
3초 퀴즈 — 이 지붕들의 공통점은?
제각각으로 보이는 흰 셸들은 사실 모두 하나의 구에서 잘라낸 조각들이다. 같은 곡률이라 같은 부재로 만들 수 있었고, 그 덕에 공사가 가능해졌다. 다음에 사진을 보면 셸들의 곡면이 닮아 있는지 확인해 보시길. 닮음이 이 건물을 세웠다.
01
항구에 내려앉은 지붕들
베넬롱 포인트는 삼면이 바다인 곶이다. 웃손은 이 자리의 건축이 사방에서, 그리고 위에서 내려다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 건물에는 뒷면이 없다. 겹쳐진 흰 셸들은 어느 각도에서 봐도 완결된 조형이고, 페리 위에서도 다리 위에서도 저마다의 표정을 보여준다. 돛이라는 사람도, 조개라는 사람도, 오렌지 조각이라는 사람도 있다. 해석이 갈리는 형태가 오래 사랑받는다는 것을 이 지붕만큼 증명해 온 건물도 드물다. 도시의 온갖 기념품에 이 실루엣이 박혀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02
풀리지 않던 지붕의 기하학
당선안의 자유로운 셸 곡면은 당시의 구조 기술로 세울 방법이 없었다. 몇 해의 시행착오가 이어졌다. 돌파구는 웃손 자신에게서 나왔다. 웃손이 훗날 즐겨 설명한 비유대로라면, 모든 셸은 한 개의 구 표면에서 잘라낸 조각들이다. 오렌지 한 알에서 저며 낸 껍질 조각들처럼. 모든 셸을 하나의 구 표면에서 잘라낸 조각들로 통일하면, 같은 곡률의 프리캐스트 부재를 반복 생산해 조립할 수 있게 된다. 자유 형태를 표준 부재의 조립으로 번역한 이 전환이 공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낭만이 막힌 자리를 기하학이 뚫은 것이다. 다만 지붕의 승리가 실내의 승리는 아니었다. 셸의 형태와 공연장의 음향이 어긋나는 문제는 이후 오랜 숙제로 남았다. 나는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등이 곧게 펴진다.
03
백만 장의 타일과 두 개의 광택
지붕에는 백만 장이 넘는 타일이 붙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가까이 본 사진에서 타일들은 광택과 무광이 셰브론 무늬로 섞여 있는데, 이 혼합 덕에 지붕은 햇빛을 통째로 반사하지 않고 부드럽게 감아 낸다. 멀리서는 순백으로, 가까이서는 크림색의 결로 읽히는 표면. 흰 건물을 계획해 본 사람이라면 이 배합의 공력을 안다. 순백은 눈부시고 아이보리는 탁해지기 쉬운데, 이 지붕은 그 사이의 좁은 길을 타일 두 종류로 걸었다.
04
건축가 없이 완성된 걸작이라는 상처
공기가 늘어지고 예산이 불어나자 정치가 개입했다. 새로 들어선 주 정부와 갈등하던 웃손은 1966년 사임했고, 호주를 떠난 뒤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내부는 다른 팀의 손으로 완성되었고, 개관식에 설계자의 자리는 없었다. 만년에 이르러서야 화해가 이루어져, 웃손은 멀리서 개보수의 원칙을 자문했고 그의 이름을 붙인 방이 건물 안에 생겼다. 도시의 자부심이 된 건축 뒤에 이런 상처가 있다는 사실이, 이 건물을 볼 때마다 마음 한쪽을 서늘하게 만든다. 걸작의 연대기는 생각보다 자주 잔인하다.
05
오늘의 공간으로 가져온다면
시드니에서 배울 것을 하나만 고르라면, 나는 지붕이 아니라 계단을 고르겠다. 이 건물의 발치에는 도시에서 공연장으로 올라가는 폭 넓은 계단 광장이 펼쳐져 있다. 공연 표가 없는 사람도 그 계단에 앉아 항구의 저녁을 본다. 기념비의 가장자리를 도시의 걸상으로 내준 것이다. 집으로 옮기면 현관 앞의 낮은 툇마루 한 뼘, 창가의 걸터앉는 턱 하나가 같은 문법이다. 앉을 수 있는 가장자리가 많은 공간일수록 사람들이 오래 머문다. 위대한 건축의 비밀은 의외로 엉덩이 높이에 있다.
현장 메모
현장 메모. 이 건물의 내부 공연장 음향은 개관 이후 오랫동안 논쟁거리였고, 근래의 대규모 개보수에서 음향 반사판과 설비를 다시 손보았다. 외피의 백만 타일 역시 반세기 넘게 세척과 교체를 반복하며 관리되어 왔다. 세계유산이라는 왕관은 유지관리 예산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사진 속에서 영원히 희게 빛나는 지붕은, 실제로는 끊임없이 손질되는 지붕이다.
마무리
Sydney Opera House는 완공되기 전에 도시의 상징이 되었고, 설계자를 잃고서도 걸작이 된 이상한 건물이다. 항구의 계단에 앉아 그 지붕을 바라보는 저녁을, 시드니 사람들은 특별한 날로 치지 않을 것이다. 그 무심함이 이 건축의 최종 성적표다. 언젠가 그 계단의 한 칸을 차지하고 앉아, 십육 년의 상처와 반세기의 사랑을 한꺼번에 올려다보고 싶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웃손은 왜 완공을 보지 못했나?
예산과 공기를 둘러싼 정부와의 갈등 끝에 1966년 사임하고 호주를 떠났으며, 이후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 만년에 개보수 원칙 자문으로 화해가 이루어졌지만, 완성된 건물을 직접 보는 일은 끝내 없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특별한 이유는?
2007년 등재 당시 설계자인 웃손이 생존해 있었다. 살아 있는 건축가의 작품이 세계유산이 된 것은 극히 드문 사례로 꼽힌다.
집에 가져올 힌트 하나를 꼽는다면?
앉을 수 있는 가장자리다. 창가의 턱, 현관의 낮은 단처럼 걸터앉는 자리가 많은 집일수록 사람이 오래 머문다. 시드니의 계단 광장이 그 원리의 기념비적 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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