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man Foster의 30 St Mary Axe — 빛과 체류감이 말해주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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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STORY · 따뜻한 빛과 표면
30 St Mary Axe
Norman Foster의 건축을 빛과 체류감의 관점으로 읽다
빛과 체류감 · ARCHITECTURE ESSAY
30 St Mary Axe
Norman Foster의 건축을 실내건축과 현장의 눈으로 다시 읽다
좋은 공간은 밝기만 조절하지 않는다. 머무는 속도와 감정의 온도를 바꾼다.
런던 시티의 좁은 골목을 찍은 사진들을 넘기다 보면, 화면 귀퉁이마다 같은 실루엣이 끼어든다. 총알 같기도 하고 오이 피클 같기도 한 유리 탑. 30 St Mary Axe, 런던 사람들이 거킨이라 부르는 노먼 포스터의 타워다. 곡면 유리로 감싼 사무실 탑이 어떻게 빛과 바람을 다루는지, 그리고 그 안의 하루는 어떤 체류감인지. 오늘은 이 매끈한 외피의 안쪽을 읽는다. 유리 건물이 다 같은 유리 건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건축가의 특징
본 이미지는 실사진이 아니라, 마스터 DB의 건축 특성 키워드를 바탕으로 자체 제작한 요약 일러스트입니다.
GOOGLE MAP
건축물이 놓인 자리
30 St Mary Axe · 런던, 영국
도시 기준 좌표: 51.5072, -0.1276
잠깐 쉬어가는 코너 🧐
3초 퀴즈 — 곡면 건물에 곡면 유리는 몇 장?
정답은 한 장. 꼭대기를 덮는 렌즈 모양 유리를 빼면, 이 곡선 탑의 외피는 전부 평판 유리다. 곡률을 잘게 쪼개 평면으로 근사한 결과다. 곡선처럼 보이는 것과 곡선인 것 사이의 비용 차이를, 이 탑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01
곡면이 바람을 다루는 법
거킨의 유선형은 멋을 위한 곡선이 아니다. 각진 고층 건물은 발밑에 돌풍을 만들어 보행자를 괴롭히는데, 이 탑의 둥근 몸통은 바람을 부드럽게 흘려보내 지상의 풍환경을 눅인다. 형태가 도시의 바람 지도를 바꾸는 것이다. 곡면 건물인데도 외피 유리는 꼭대기의 렌즈 한 장을 빼면 전부 평판이라는 사실도 이 탑의 유명한 디테일이다. 곡률을 잘게 쪼개 평면의 조합으로 풀어낸 것. 화려한 형태 뒤에 시공의 경제가 숨어 있다. 나는 이런 종류의 절약이 좋다. 낭만을 지키는 것은 언제나 계산이다.
02
나선으로 파 내려간 빛 우물
외피를 자세히 보면 어두운 유리 띠가 나선을 그리며 감아 올라간다. 장식 무늬가 아니라 층마다 파낸 아트리움들의 흔적이다. 각 층의 평면 가장자리를 부채꼴로 비워 위아래로 연결하면, 건물 속에 나선형 빛 우물들이 생긴다. 창가에서 먼 안쪽 자리까지 낮의 빛이 들어오고, 우물을 타고 공기가 흐른다. 카사 바트요가 백 년 전 채광정으로 풀었던 문제를, 포스터는 초고층의 나선으로 다시 푼 셈이다. 빛 우물의 계보는 이렇게 시대를 건너 이어진다.
03
숨 쉬는 유리 탑
이 탑의 야심은 자연환기였다. 이중 유리 외피 사이의 공기층, 나선 아트리움의 굴뚝 효과, 열리는 창. 밀폐된 유리 상자에 냉방을 퍼붓는 대신, 건물이 스스로 숨 쉬는 시간을 늘려 에너지를 줄이겠다는 설계다. 실제 운영에서 자연환기가 계획만큼 쓰이는가에 대한 논의는 준공 후에도 이어졌지만, 방향 자체가 상업 고층 건물의 기준을 옮겼다는 데는 이견이 적다. 유리 타워는 온실이라는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 통념과 싸우는 건물은 결과와 무관하게 업계의 눈금을 옮긴다.
04
안에서 보내는 하루
이 탑의 체류감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안쪽 자리의 빛이다. 보통의 사무실에서 창가와 안쪽 자리는 다른 계급처럼 나뉘는데, 나선 아트리움은 그 격차를 줄이는 장치다. 안쪽 책상에도 하늘의 기색이 닿고, 위아래 층의 소리와 기척이 우물을 타고 은은하게 섞인다. 층층이 밀봉된 건물이 아니라 세로로 이어진 마을에 가까운 감각. 하루 여덟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라면, 전망보다 이 기척의 설계가 삶의 질에 가깝다고 나는 믿는다. 창밖 풍경은 금방 익숙해지지만 빛의 질은 매일 몸에 닿는다.
05
오늘의 공간으로 가져온다면
거킨에서 가져올 것은 하나다. 안쪽 자리의 빛을 포기하지 말 것. 집이든 사무실이든 창에서 먼 자리는 조도가 아니라 존엄이 떨어진다. 그 자리를 살리는 방법은 의외로 소박하다. 빛을 가로막는 높은 가구를 창가에서 치우고, 유리나 타공 파티션으로 시선과 빛이 새어들 틈을 만들고, 안쪽 벽을 반사율 높은 밝은 면으로 바꾸는 것. 그래도 모자라면 안쪽 자리에 가장 좋은 조명을 준다. 창가가 아니라 가장 어두운 자리에 가장 좋은 빛을. 이 역전이 거킨의 나선이 하는 일이고, 좁은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현장 메모
현장 메모. 이중 외피와 나선 아트리움은 도면에서는 우아하지만, 운영에서는 화재 구획과 연기 제어라는 숙제를 동반한다. 층을 세로로 연결하는 보이드는 빛과 공기의 길이면서 동시에 연기의 길이 될 수 있어서, 감지기와 방화 셔터, 가압 제연의 설계가 정교해야 한다. 숨 쉬는 건물일수록 소방 설비는 더 예민해진다. 개방의 대가는 언제나 제어라는 것. 현장의 오래된 문법이다.
마무리
30 St Mary Axe은 형태로 기억되지만 실력은 단면에 있다. 바람을 눅이는 곡면, 빛을 파 내려간 나선, 숨 쉬려는 유리. 매끈한 겉과 달리 속은 온통 공기와 빛의 배관이다. 이 탑이 던지는 질문은 우리 자리에도 유효하다. 지금 내가 여덟 시간을 보내는 자리에는, 하늘의 기색이 닿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거킨이라는 별명은 어디서 왔나?
오이 피클(gherkin)을 닮았다는 데서 온 애칭이다. 처음에는 놀림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런던 스카이라인의 공식 애칭처럼 자리 잡았다.
나선형 어두운 띠의 정체는 무엇인가?
층마다 평면 가장자리를 부채꼴로 비워 만든 아트리움이 위아래로 이어지며 생긴 흔적이다. 빛을 안쪽까지 끌어들이고 공기가 순환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집에 적용할 힌트 하나를 꼽는다면?
가장 어두운 자리에 가장 좋은 빛을 주는 역전이다. 창가 중심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안쪽 자리의 조명과 반사면에 먼저 투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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