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Bruder Klaus Field Chapel인가 — 도시와 생활으로 푸는 건축 이야기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ARCHITECTURE STORY · 묵직한 구조감
Bruder Klaus Field Chapel
Peter Zumthor의 건축을 도시와 생활의 관점으로 읽다
도시와 생활 · ARCHITECTURE ESSAY
Bruder Klaus Field Chapel
Peter Zumthor의 건축을 실내건축과 현장의 눈으로 다시 읽다
건축은 혼자 서 있지 않는다. 도시의 결, 생활의 습관, 시대의 욕망과 함께 읽혀야 한다.
밭 한가운데의 예배당은 주차장이 멀다. 차에서 내려 밀밭 사이 흙길을 십오 분쯤 걸어야 그 콘크리트 탑 앞에 선다. 메헤르니히의 Bruder Klaus Field Chapel. 한 농부 부부가 자신들의 수호성인에게 바치려고 페터 춤토르에게 편지를 보냈고, 세계적인 건축가는 그 시골 예배당의 설계를 맡았다. 도시도 관객도 없는 들판의 건축이 어떻게 세계의 순례지가 되었는지. 오늘은 그 이야기를 걷는 속도로 읽는다.
이 건축가의 특징
본 이미지는 실사진이 아니라, 마스터 DB의 건축 특성 키워드를 바탕으로 자체 제작한 요약 일러스트입니다.
GOOGLE MAP
건축물이 놓인 자리
Bruder Klaus Field Chapel · 메헤르니히, 독일
도시 기준 좌표: 50.5880, 6.6580
잠깐 쉬어가는 코너 🧐
만약 당신이 춤토르였다면?
세계 곳곳의 미술관 의뢰가 줄을 선 건축가에게, 이름 모를 농부 부부의 편지가 도착한다. 밭 한가운데의 작은 예배당 하나. 수지타산으로는 답이 없는 이 의뢰를 수락할 수 있었을까. 춤토르는 받아들였고, 그 선택은 그의 대표작 목록에 가장 작은 건물을 올려놓았다.
01
농부의 편지에서 시작된 건축
의뢰인은 개발 회사도 교구도 아닌, 이 들판에서 평생 농사를 지어 온 샤이트바일러 부부였다. 감사의 뜻으로 성인 브루더 클라우스에게 작은 예배당을 봉헌하고 싶다는 편지에, 춤토르가 응답했다. 그의 어머니가 같은 성인을 공경했다는 인연이 함께 전해진다. 시공의 상당 부분도 농부와 이웃들, 지역 장인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건축 잡지의 세계와 밭일의 세계가 한 건물에서 만난 것이다. 유명한 건축의 목록에서 이만큼 사적인 출발을 가진 건물은 드물고, 그 사적임이 나는 오래 마음에 남는다.
02
통나무를 태워 만든 방
공법이 이 건물의 전설이다. 백여 개의 통나무를 천막처럼 기대 세워 내부 거푸집을 만들고, 그 둘레에 콘크리트를 하루 한 켜씩 층층이 다져 올렸다. 굳은 뒤에는 안의 통나무에 불을 놓아 여러 날에 걸쳐 태워 냈다. 콘크리트가 불을 기억한다고 쓰고 싶어지지만, 남은 것은 그을음과 주름이라는 물증이다. 기억이라는 말은 그 벽을 보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 둔다. 타고 남은 내부 벽에는 통나무의 주름과 그을음이 그대로 새겨져, 동굴이자 굴뚝 같은 검은 방이 되었다. 거푸집을 떼어 내는 대신 태워 없앤다는 발상 하나로, 세상에 같은 것이 없는 실내가 태어났다.
03
하늘로 뚫린 지붕
검은 방의 정수리는 눈물방울 모양으로 하늘을 향해 뚫려 있다. 유리는 없다. 비가 오면 비가 들어와 납을 부어 만든 바닥의 오목한 자리에 고이고, 해가 들면 빛기둥이 그을린 벽을 쓸고 지나간다. 날씨를 막는 것이 지붕의 정의라면, 이 지붕은 날씨를 초대하는 반대의 정의를 골랐다. 고인 빗물에 하늘이 비치는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이 작은 탑이 왜 순례지가 되었는지 더 설명이 필요 없었다. 건축이 자연을 이기려 들지 않을 때 생기는 힘이 있다.
04
들판이라는 입지의 발명
이 예배당의 접근로는 불편함이 아니라 설계다. 차가 닿지 않는 밭길을 걸어야만 도착할 수 있고, 그 걷는 시간이 예배당의 전실 노릇을 한다. 밀밭과 하늘과 바람 소리로 마음을 씻고 나서야 검은 방의 침묵과 만나는 순서. 도시의 랜드마크들이 접근성을 다투는 동안, 이 건물은 거리를 자산으로 뒤집었다. 일부러 멀리 두는 설계가 성립하는 드문 경우다. 매일 이 밭길을 오가며 예배당을 돌보는 마을 사람들의 생활이 그 거리를 지탱한다.
05
오늘의 공간으로 가져온다면
이 예배당에서 가져올 것은 하나다. 도착의 시간을 설계할 것. 좋은 공간일수록 문을 열자마자 전부를 보여주지 않는다. 현관에서 거실까지의 몇 걸음, 짧은 복도의 어둑함, 모퉁이 하나. 그 전이의 시간이 목적지의 값을 올린다. 아파트 현관이라면 중문 하나, 낮은 조명 하나로도 그 몇 초를 만들 수 있다. 십오 분의 밭길을 몇 초의 복도로 번역하는 일. 규모는 초라해도 원리는 같다. 도착이 느린 집일수록 집에 온 기분은 진해진다.
현장 메모
현장 메모. 유리 없는 천창은 이 예배당의 심장이지만, 관리의 눈으로는 배수 계획 그 자체다. 들이친 비는 납 바닥의 경사와 오목한 고임 자리로 모여 처리되고, 그을린 벽면은 별도의 마감 없이 풍화와 함께 늙어 간다. 닫지 않기로 한 구멍 하나 때문에 바닥의 물매와 재료 선택이 전부 다시 계산된 것이다. 개방은 언제나 그 뒤의 치밀함으로 성립한다.
마무리
Bruder Klaus Field Chapel은 도시 밖의 건축이 도시의 문법을 되묻는 사례다. 농부의 편지, 태워 만든 방, 비를 초대하는 지붕, 걸어야 닿는 거리까지. 건축의 크기와 감동의 크기가 무관하다는 것을 이 작은 탑만큼 조용히 증명하는 건물은 드물다. 오늘 일기 끝에는 이렇게 적는다. 멀리 있어서 더 가까운 것들이 있다. 이 예배당이 그렇고, 어떤 마음들이 그렇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브루더 클라우스가 누구인가?
15세기 스위스의 은수자 니콜라우스 폰 플뤼에를 가리킨다. 농민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는 인물로, 예배당을 봉헌한 농부 부부의 신앙 대상이었다.
내부가 검은 이유는 무엇인가?
통나무 거푸집을 태워 제거한 흔적이다. 콘크리트 내벽에 통나무의 주름과 그을음이 그대로 남아, 다른 어떤 건물에도 없는 검은 질감의 방이 되었다.
집에 가져올 힌트 하나를 꼽는다면?
도착의 연출이다. 현관의 중문과 낮은 조명으로 짧은 전이의 시간을 만들면, 거실에 들어서는 몇 초의 기분이 달라진다. 느린 도착이 공간의 값을 올린다.
댓글
댓글 쓰기